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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만남과 인연

이제 내일이면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속초 한화콘도에 모여든 남쪽 참가자들은 대체로 60여년 만에 헤어진 자식과 형제, 자매 등 혈육을 만난다는 설렘, 기대와 함께 만나도 과연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조금은 들뜬 표정들이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합의한 뒤에도 시행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것이어서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이동식 침대에 누워 한화콘도에 들어온 김섬경(91) 할아버지. 김씨는 북쪽의 가족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전날인 18일 속초에 도착했으나, 감기 증세로 몸져누웠다. 김씨는 침대에 누워서도 금강산에 가서 딸 춘순(67), 아들 진천(66)씨를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씨가 최종적으로 금강산에 들어가 딸과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의료진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의료진도 김씨의 간절한 염원을 듣고 고민 중이다.

 

이번에 아들과 처제, 조카를 만난다는 황해도 출신 강능환(92)씨는 “결혼한 지 4개월도 안 돼 1·4후퇴 때 헤어졌는데, 당시 아내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며 “이번에 아들을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63년 전 일이어서 어색한 지 헤어진 처를 ‘(아내)분’이라고 불렀다. 그는 “(결혼 생활이 짧아) 아내와의 기억은 특별한 게 없다. 이제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을 만나면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아들은 날 닮았는지도 궁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1951년 1·4후퇴 때 황해도 옹진에서 남쪽으로 온 김명복(66)씨는 이번에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을 들고 왔다. 이번에 금강산에서 만나는 누나 김명자(68)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6·25 때 아버지는 먼저 남쪽으로 내려왔고, 어머니도 1·4후퇴 때 4살 명복씨와 2살 여동생만 데리고 남쪽으로 왔다. 그 바람에 누나 명자씨는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 가운데 하나는 명자씨를 찾으라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황해도 옹진에 남겨둔 부동산을 찾으라는 것이다.

 

평남 대동군 출신인 김동빈(79)씨도 북쪽 누님(81)을 만날 예정이다. 그는 “어릴 때 헤어진데다 벌써 63년이 흘러 만나도 얼굴이나 제대로 알아볼지 모르겠다”면서도 “누님이 예뻐서 평양시내의 친구들까지 와서 보고 가고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는 “1·4후퇴 지나고 연합군이 평양에 원자폭탄을 터뜨린다는 소문이 돌아 다들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월남할 생각이 없었고 그냥 며칠 피해 있겠다는 생각으로 남쪽으로 왔는데, 돌아갈 길이 막혔고 그게 벌써 63년이 됐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박병수 선임기자, 속초/공동취재단  등록 : 2014.02.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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