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꽤 쌀쌀했다. 마을버스 어플을 확인하고 차 시간에 딱 맞춰 나왔으면 마을버스 기다리며 10분 가까이 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초록마을에 바짝 붙어서 바람을 피하고 있으니 마을버스가 거북이처럼 다가왔다. 서둘러 마을버스에 오르며 광속으로 티머니를 찍었다. 그냥 뒤쪽으로 가기가 뭐해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 아저씨의 입도 얼어붙었나 보다.
학원에서 아파트까지 차로 7~8분 거리다. 타는 사람들이 점점 느는가 싶더니 마을버스가 금세 아파트 입구로 진입했다. 며칠 전부터 은하수가 밝은 화단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히터로 더운 버스에서 내리니 추운 밤공기가 상쾌했다. 사진기를 꺼내 화단을 찍었다. 화단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들은 저렇게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데 나는 얼마나 세상에 밝은 빛을 내며 살고 있을까?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세상에 빚지는 삶만은 살지 말아야 겠다.
하늘을 보니 달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제법 컸다. 오늘 따라 유달리 달이 정겹게 느껴졌다. 늦었기에 달을 밖에다 놓아두고 모른 척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밥을 푸지게 먹고 누워 있으니 달이란 녀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심심한데 밖에 나가서 그 녀석과 놀아나 볼까? 근데 싫다. 춥다. 이런 날은 집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게 최고다. 따땃한 방바닥에 등짝 대고서 말이다. 달아, 잘 자거라. 곤해서 오늘은 빨리 자야 겠다. 너 잠 못 잔다고 나 깨우면 안 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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