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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일상의 미학

화분 정리 2

 

재환이의 시험 시간이 아니었으면 화분 정리가 꽤 오래 걸렸을 것이다. 재환이 시험 기간이라 산만하면 안 되니 빨리 끝내야 한다며 재문 엄마가 토요일 학원 수업이 끝나고 일찌감치 화분대 조립을 서둘렀다. 조립이야 이골이 난 솜씨인지라 하나 조립하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현이도 재미있다며 옆에서 조립을 거들었다. 우선 철제 화분대 두 개를 조립했다. 베란다에 있던 화분을 한 쪽으로 치워놓고 기존의 화분대를 거실로 일단 다 뺐다. 베란다에 새로 구입한 화분대를 놓으니 뽀대가 났다. 재문 엄마가 너무 좋아 했다. 화분대가 가격 대비 괜찮았다. 나는 화분대를 조립하고 베란다로 옮겨 수평을 잡는 데까지만 도와주고 거실로 들어와 TV 시청을 했다. 이제부터 한 동안은 내가 할 일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재문 엄마도 별 불평 없이 새 화분대에다 화분을 하나씩 하나씩 정성들여 올려놓았다. 베란다의 북적대던 화분이 정리되니 정말 기분이 좋다고 연거푸 말을 했다. 화분을 정리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조립한 두 개의 화분대를 금방 정리했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화분 정리 속도가 무척 빨랐다. 다음 화분대 두 개를 조립해야 했다. TV 시청을 중단하고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구 하나가 사라졌다. 스패너의 길이가 짧아 계속 돌릴 수 있는 편한 것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으로 작업을 했다. 2/3 바퀴 돌리고 다시 빼서 맞추고 또 돌리고 또 다시 빼서 맞추고 또 돌리고. 정말 불편했다. 어디로 갔지? 다시 찾아 봤지만 없었다. 밤이 깊어지며 피곤했는지 속도감이 줄었다.

 

처음 두개의 화분대보다 확실히 늦게 조립을 하고 베란다로 화분대를 옮겼다. 수평을 맞춰 주고 잽싸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내 일은 여기까지. 다시 TV 시청에 몰두했다. 재문 엄마가 또 다시 화분대에 화분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한참 재미있게 TV를 보고 있는데 재문 엄마가 불렀다. 다육이 화분을 마저 정리하라고 했다. 아, 다육이 심을 게 더 있었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내일 심으면 안 될까? 재문 엄마가 오늘 늦더라도 정리를 다 할 거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화분에다 다육이를 심기 시작했다.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 사이 재문 엄마는 새로 산 철제 화분대 정리를 다 끝내고 안방 앞의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기존 화분대 5개 중 다리가 휘어 버릴 것 2개는 빼고 3개를 재활용했다. 재문 엄마는 재활용의 달인이다.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으므로 또 거실로 들어 갔다. 이제 더 이상 부르지 말라고 했다. 새벽 5시였다. 자야 할 시간이지만 재문 엄마만 두고 자기가 뭐했다. 밀린 TV 시청을 계속했다. 재문 엄마가 방에 들어가 자란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재문 엄마가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두 눈 딱 감고 방으로 들어가 잤다. 8시쯤 일어나니 재문 엄마가 베란다에 나가 보라고 했다. 정말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재문 엄마가 잠을 못 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기분은 몹시 좋은 것 같았다. 너무 멋지다고 말하며 베란다 모습을 나에게 자랑했다. 진작에 해 줄걸. 바쁘다는 핑계로 못해줘 미안했다. 이제 차 마실 테이블만 사서 베란다에 놓으면 재문 엄마의 작은 바람은 이루어진다. 멋진 테이블 찾아서 꾸며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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