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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생각 에세이

사전

 

 

영어 관련 출판사에 다닌 것이 한참이니 영어 사전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내가 주로 쓰던 영한사전은 금성 뉴에이스 영한사전이었다. 뜻 분류가 잘 되어 있어 그 사전만 주로 끼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젠 다른 사전을 보는 것이 불편할 정도이다. 학원을 하고 나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애들은 스마트폰 영한사전으로 단어 뜻을 찾지만 지금도 나는 기존의 종이 사전이 편하다. 손에 익어 단어 찾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애들이 스마트폰으로 찾기 전에 나는 벌써 다 찾았다. 학생들이 놀란다. 엄청나게 빠르시네요.

 

나에게는 10년을 훨씬 넘게 쓴 영한사전이 한 권 있다. 금성 출판사 뉴에이스 영한사전이다. 사전 겉표지는 낡아서 이제 너덜거리기까지 한다. 제본하는 집에 가서 표지를 다시 만들어 붙여야 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대로 쓰고 있다. 나의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에 자꾸 정이 가나 보다. 재문 엄마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신판 뉴에이스 영한사전을 하나 사 주었다. 그러나 이 번드르르한 새 사전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 아마 책장 한 구석에 쿡 처박혀 있을 것이다. 불쌍한 놈.

 

새로 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옷은 책과 다르다. 재문 엄마가 옷 없다고 옷 없다고 사라고 사라고 하면 겨우 하나를 산다. 하지만 새 옷을 사면 나는 그 옷을 가장 자주 입는다. 재문 엄마가 사랄 땐 안 사더니 사고서는 그것만 입고 다닌다고 놀릴 정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에 관련되어서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손때 묻은 책을 좋아하던 예전의 습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책등을 보며 손때가 많이 묻어 있으면 공부 정말 제대로 했다고 뿌듯해하던 기억이 있어서 아마 책은 새 것으로 쉽사리 바꾸지를 못하는 가 보다.

 

8월 2일부터 8월 4일까지는 학원 여름 방학이다. 방학 첫 이틀간은 큰 아들 녀석 군대 면회를 간다. 수박 한 통 싸들고 맛난 것 준비해서 펜션 빌려 휴가 여행 겸 갔다 올 계획이다. 남는 하루는 여유 있게 쉬면서 보낼 생각이다. 이 날은 나의 오래된 사전이 새 옷을 입는 날이다. 제본집을 잘 찾아 사전에 겉표지를 씌울 생각이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경기대학교 앞쪽에 제본 전문집이 있었다. 제본하면 10년은 족히 더 쓸 것이다. 혹시 출판사에서 박물관 전시에 필요하니 기증하라 하는 건 아닐까? 그때까지 한 번 잘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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