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삶에 대해 얼마나 주도적으로 살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나의 삶을 보지는 않았는지 살피게 됩니다. 아직 인생의 절반이 남았습니다. 내가 주가 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너무 고집스런 삶이 아니라 유연함을 갖는 절도 있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서울 생활의 번잡스러움과 소란스러움으로 투덜거렸는데 이제 그것도 뒤로 미뤄 놓으려 합니다. 10여년 남은 서울 생활 힘껏 해 보고 좋은 곳 찾아 여생을 즐겨야 겠습니다. 지금의 나이는 이제까지 있었던 삶과 앞으로 있을 삶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므로 중요합니다. 지혜를 한껏 모아서 움직여야 겠습니다.
나이가 한껏 들어도 애들을 가르칠 겁니다. 속내는 서당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실력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금강산 앞에 서당 짓고 애들을 가르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들어도 애들 가르치는 일은 계속 할 것입니다. 배운 게 그것밖에 없으니 다른 도리 있어야죠.
오늘은 도연명의 시가 제 눈에 들어옵니다. "전원으로 돌아와서"란 시입니다.
<전원(田園)으로 돌아와서>
젊어서부터 속세에 맞는 바 없고 / 성품은 본래 산을 사랑하였다 / 도시에 잘못 떨어져 / 삼십 년이 가버렸다 / 조롱 속의 새는 옛 보금자리 그립고 / 연못의 고기는 고향의 냇물 못 잊으니 / 내 황량한 남쪽 들판을 갈고 / 나의 소박성을 지키려 전원으로 돌아왔다 / 네모난 택지(宅地)는 십여 묘 / 초옥에는 여덟, 아홉 개의 방이 있다 / 어스름 어슴푸레 촌락이 멀고 / 가물가물 올라오는 마을의 연기 / 개는 깊은 구덩이에서 짖어 대고 / 닭은 뽕나무 위에서 운다 / 집 안에는 지저분한 것이 없고 / 빈 방에는 넉넉한 한가로움이 있을 뿐 / 긴긴 세월 조롱 속에서 살다가 / 나 이제 자연으로 다시 돌아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