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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생각 에세이

메모지 한 장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나는 무디다. 뉴스를 봐도 그냥 건성으로 보다시피 한다. 얼마 전에 밥을 먹다 우연히 뉴스에서 회장이란 사람이 열변을 토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도 여느 때처럼 그렇게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날 그 회장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었다. 고향이 서산이었다. 충청도 사람이었다. 동향은 아니지만 내 고향인 온양에서 멀지 않은 동네의 사람이었다.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서산 출신의 동창들이 여럿 있다. 서산에서 온 동창들을 촌놈들이라고 놀려 댔지만 똘똘 맞은 녀석들이었다. 그 녀석들의 선배격인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 왜 자살했는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니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수사하며 일이 생겼다. 죽으며 남긴 성완종 리스트가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으레 그렇듯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모두가 리스트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4월 13일자 기사를 보니 성완종 리스트에서 거명된 김기춘 씨가 "진실은 하느님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수 신학자가 이 말에 "김기춘, 이완구, 박근혜 이런 인간들이 천주교 신자라면 한국천주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악마도 하느님을 들먹이고 성서를 인용한다." 라고 코멘트를 했다. 김기춘 씨는 하느님을 그렇게 값싸게 찾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느님을 열심히 팔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로 세상이 혼란스럽다. 성완종 메모가 본인의 것인지 필적 감정까지 했나 보다. 여야 간 대선 자금 수사 공방이 진행 중이고 정권 퇴진 전단도 살포되었다고 한다. 4.29재보선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재계도 검찰 수사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망자의 바지 안쪽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 한 장이 벚꽃이 지고 잎들이 어수선하게 흩뿌려지는 이즈음 마음을 한 없이 산란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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