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집사람이 시현이와 함께 마트에 갔다. 그 사이에 나는 어제 올리지 못한 구피 분양글을 올렸고 다 끝내지 못한 수조 물갈이도 했다. 집사람이 들어오며 눈이 엄청 온다고 했다. 며칠 있으면 3월인데 주책없게 웬 눈이람? 집사람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믹스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마트에서 믹스커피가 별로 할인이 안 돼서 사오지 못해 못 마셨다. 수조 물을 계속 갈았다. 1시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5시가 다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성당갈 시간이었다. 더 붙들고 있으면 성당에 늦을까봐 물 가는 것을 멈추고 카카오택시로 택시를 불러 타고 서강대학교로 갔다. 택시 운전기사의 노련한 택시 운전 덕이었을까? 눈이 와 바닥이 질척거렸는데도 평상시보다 서강대에 약간 일찍 도착했다. 성당으로 걸어올라 가며 화단에 있는 눈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사진이라 좀 안 나왔다. 깜빡 하고 사진기를 안 가지고 왔다. 좀 더 멋있게 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웠다.
신부님의 강론이 약간 길어져 서강대를 늦게 빠져 나왔다. 오늘은 미사를 보고 신촌 가서 저녁을 먹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쎌빠로 갈까 착한돼지로 갈까 잠깐 고민했다. 만장일치로 착한돼지로 가기로 했다. 애들이 먼저 가서 예약을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사람과 내가 간발의 차이로 착한 돼지에 먼저 도착했다. 예약을 했다. 의자에 앉아서 자그마치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엄청 오래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 종업원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투를 훈계하는 시간이 잠깐 있었다. 대기 번호 29번이 불렸다. 우리의 번호였다. 안내되는 식탁에 앉았다. 시현이와 재환이가 각자 먹고 싶은 걸 한 접시 담아 오고 재문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접시 가득 담아 왔다. 시현이가 쎌빠보다 맛있다며 신나게 먹었다. 재환이는 예전만큼 먹지 못했다. 잘 먹어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을 텐데. 애들이 얼추 먹자 집사람도 먹는 속도를 냈다.
1시간 반이 채 안 되게 먹고서 착한돼지를 빠져나왔다. 착한돼지에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기온 차이가 약간 났다. 추웠다. 시현이가 지하도를 통해 이동하자고 했다. 모두 지하도 입구로 전력을 다해 걸었다. 지하도에 내려가니 호주제 볼리 신발을 팔았다. 재환이가 관심을 보였다. 재환이는 280mm가 필요했다. 그런데 270mm 신발 밖에 없었다. 사장님에게 다시 찾아보라고 했다. 전 직원이 달려들어 찾았지만 없었다. 신발 가격이 2만 9천원이라 싸서 사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재환이가 신발 살 운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하도를 빠져 나와 집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비나 버스비나 그게 그거였다. 공부에 찌드러 있다가 신촌에서 바람이라도 좀 쐬니 재환이가 기분 전환이 되었나 보다. 집에 와서 잠깐 휴식을 취하니 금방 시간이 10시를 넘어섰다. 그때 구피 분양받으러 온다는 사람한테 집 근처라고 전화가 왔다. 알풀 슈퍼블러드 하이도살 4마리를 4만원에 분양했다. 내일은 반짝 추위가 있다는 데 오늘 잘 왔다.
늦은 눈의 단상(斷想) - 봄이 바로 조만치 있는데 눈이 왔다. 눈 사진 속에는 많은 군상들이 있다. 여럿이 모여 있기도 하고 혼자 뚝 떨어져 있기도 하다. 서로 기대어도 살고 서로 등지고도 살며 나 몰라라 혼자 살기도 한다. 일정 거리를 두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격을 갖춰 살고 있다. 균형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어떠한가? 작은 배려도 허용하지 않는 군파들이 혼란스럽다. 잠깐 거리를 둬 보자. 서로를 다시 살펴보자. 한 번 더 이해하고 인정해 보려 애써 보자.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을 줘 패든지 안 보는 것이 균형이다. 더 이상 할 게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조용한 세상에서 언제 한 번 살아 보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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