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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전해준 귤차 학원에 문들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사무실에 앉았는데 컴퓨터 모니터 앞에 귤차가 있었다. 유기농 귤차란 거창한 이름을 달고서. 이 귤차가 뭐지? 얘가 왜 여기에 있지? 재문 엄마가 함께 오지 않아서 바로 물어 보지 못했다. 수업을 한참 하며 귤차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재문엄마가 먼저 귤차 얘기를 꺼냈다. 그 귤차는 초등학교 5학년반의 인경이란 아이가 직접 만들어 갖다 주었다고 한다. 어린 초등학생인데 선생님을 위하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다. 재문엄마한테 귤차를 끓여 먹자고 하니 싫다며 귤차를 갖고 가버렸다. 엄청 부러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왜 갖고 오는 게 없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수업 들어가서 애들 하나 하나 붙잡아 놓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 한 가지씩 가져 오라고 말해야 겠다. 가져올 것 후보.. 더보기
지란(芝蘭)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점심을 먹고 교보문고에 갔습니다. 학원 초등 수학 교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학습 코너에 가니 교보문고 견학 온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유치원생인지 초등학생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인솔 교사는 애들을 조용히 시키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아이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기에 여느 때 같았으면 험한 얼굴하며 짜증 부리고 애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얘기도 했으련만 오늘은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 떠드는 애들 그냥 놔두었냐고요? 애들이 작금의 어른들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 애들은 떠들면서 그래도 주위 사람들 눈치는 보았거든요. 선생님 눈치 보고 손님들 눈치 보고 매장 직원 눈치 보고. 요즈음 눈치 없는 사람들 많죠? 철들.. 더보기
얘들아, 공부가 힘들면 한 번 크게 웃어 보렴 이번 주 목요일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서부교육지원청 소재 학원장 연수가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연수다. 보통 이맘 때쯤 인근의 한 장소에서 열린다. 녹번역까지 전철을 탔고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서 연수 장소에 도착했다. 오전 10시까지 였는데 꾸무럭거리다가 7분 늦었다. 사실 연수 시작은 예정 시간보다 항상 늦다. 그래서 조금 여유를 부렸던 거다. 커피 한잔 마시고 들어가니 연수를 막 시작했다. 첫 번째 강사는 웃음 전문가였다. 그 사람이 할 말은 뻔했다. "웃어라." 강연하며 혼자 앞에서 웃고 난리를 쳤다. 우리 보고 따라 웃어 보라고 했다. 몇몇 용감한 학원장들만 조그맣게 따라할 뿐 반응이 시원찮았다. 혼자서 쩔쩔 매는 게 안쓰러워 따라 웃어 줬다. 한 시간 쯤 웃고 났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 더보기
늘 구름 뭉텅이가 앉아 있다 재환이 고등학교 알아보려고 중앙고등학교 갔다 오다가 종로3가역의 스크린도어에 걸려 있는 시를 한 장 찍었다. 이하석 님의 "시인"이란 시다. 스크린도어에 있는 시들이 대개 별로여서 잘 안 보는데 이 시는 이상하게도 끌렸다. 처음엔 의미 파악이 안 돼 낯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시의 의미가 살아났다. 전철이 오기 전에 열댓 번 읽었으려나. 뭐 이런 시가 다 있냐라고 묻지 말고 여러 번 읽어 보자. 그럼 시인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들어 올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구름 뭉텅이다. 마음속에 봄의 천둥처럼 타협을 모르는 혼란스러움이 있다. 그칠 줄 모를 우레가 계속 치고 있다. 시인은 이를 이겨내고 내면의 성숙을 이뤄내야 한다. 또한 시인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적 감성으로 촉촉이 젖어 있다. 수분을 머금은.. 더보기
이제 가을도 끝나간다 서강대학교 정문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화단이 길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화단 모양새가 참 다르다. 지금은 가을. 화단에는 낙엽이 지천이다. 자존(自尊)이 있어서인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 모습이 곱다. 켜켜이 쌓여 서로 기대어 있는 너희들 모습이 정겹다. 예전 어렸을 때 낙엽에 발목을 잡히며 가을 산에서 뛰어 놀던 기억이 난다. 세월을 이만큼 이처럼 살았다. 그래, 너희들처럼 나의 삶도 언젠가 끝이 있겠지. 나도 마지막을 곱게 맞이하기 위해 열심인 삶을 살아야 겠다. 그런데 낙엽들아, 너희들 거기서 춥지 않니? 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말이다. 벌거벗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너희들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구나. 얘들아, 부족하더라도 서로의 따사로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