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날씨가 한결 풀렸다. 재문이 면회를 가니 하늘도 도우셨나 보다. 토요일에 수업 끝내고 재환이와 서둘러 출발해 저녁 8시 반쯤 현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애엄마와 재문이, 시현이가 마중 나왔다. 자기들끼리 맛난 식사도 하고 노래방도 갔다 오고 신이 났다. 미안했던지 우리 두 사람에게 해 준다고 현리 터미널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지난 번 면회 때 방이 좁아 불편했었기에 이번엔 방이 세 개인 널찍한 펜션으로 정했다. 방값 차이는 2만 5천원. 1박에 10만원이다. 비싸긴 비싸다. 현리 터미널에서 펜션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였다.
펜션에 들어와서 배가 고파 신나게 먹는데 먼저 온 세 사람이 밥을 먹는 게 시원찮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재문이가 방금 전에 부대식 라면을 끓여 줘 맛있게 먹었단다. 이 말을 듣고 재환이가 자기만 빼놓고 먹었다고 삐졌다. 대략난감. 애엄마가 비법을 전수 받았으니 집에 가서 해주겠다고 달랬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준비한 과자를 풀어 놓고 이불을 쫙 깔고서 온 집안 식구가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피곤했던지 어느 새 먼저 잠에 빠져 들었다. 애들끼리 밤늦게까지 텔레비전 보며 수다를 떨었나 보다. 좀 일찍 잤기에 아침에 먼저 깨어 보니 모두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재문이의 아침에 목욕탕을 가자는 말이 기억나 모두를 깨웠다. 재문이만 일어났고 나머지는 잠에 취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둘이서만 가기로 하고 나가려 하니 재환이도 함께 가겠단다. 참 오래간만에 두 아들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시골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함께 목욕 하니 재문이가 무척 좋아했다. 재문이가 등을 밀어줘서 시원하게 목욕을 했다. 언제 이렇게 컸지? 목욕을 끝내고 펜션에 오니 정성껏 준비된 아침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짐하게 아침을 먹고 서둘러 재문이가 가고 싶다는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가려 했는데 다섯 명이라 두 대로 나눠 타야 했다. 택시비가 서울보다 비싸서 택시 타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한 번 갈아타야 하고 버스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번잡스러움이 있었지만 아침고요수목원에 전화해서 아침 9시 반에 상면초등학교 앞에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수월하게 수목원에 도착했다. 겨울이라 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목원에 들어가니 너무 썰렁했다. 꽃이 있을 때 그리 화려하고 볼 것이 많았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시현이는 그래도 볼 것도 너무 많다며 신나했다. 네가 지난번에 안 왔으니 그렇지. 아직도 수목원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입구에서 20분쯤 들어가니 연못이 있었다. 추워서인지 연못의 물이 얼어 있었다. 장난기 많은 나이기에 이런 풍취면 물 위에 지어진 정자까지 징검다리 밟고 갔으련만 그러지 않았다. 한참이나 커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징검다리를 딛는 대신에 저 아이들을 위해 더욱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정좌하고 똑바른 모습으로 하늘을 맞는 징검다리의 모습을 닮으며 재문엄마와 함께 남은 시간 동안 삼남매가 디디고 건널 더욱 튼실한 징검다리가 되도록 애써야 겠다. 애들이 상식적인 기준을 갖고 정직함 위에서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꼭 이룰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랬다.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커피점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린 후 버스를 타고 현리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무얼 하나? 동네가 좁아 별로 할 게 없다. 문득 떠오른 생각. 볼링. 지난 번 면회 와서도 볼링을 쳤었는데 그때는 시현이가 없었다. 볼링장에 들어가 무려 세 게임을 쳤다. 이재문의 군인 파워 볼링, 이시현의 공주표 볼링, 이재환의 내패대기치기 볼링, 애엄마의의 귀요미 볼링. 나의 투포환식 볼링. 어쩌다 스트라이크를 치면 모두가 하이파이브를 하느라고 야단이었다. 애들이 재미있어 볼링장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 치고 싶은 마음을 읽으면서도 시간이 없어 그만 쳤다. 다음에 또 쳐야지.
볼링을 치고 나서 그 기세로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딸아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예상대로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딸아이가 신곡들을 불러 제꼈다. 재문이는 고등학교 때 가수 오디션에 합격한 실력파다. 노래가 힘이 있었고 음정도 정확했다. 내가 무인도를 부르다 포기하니 재문이가 끝까지 불러 주었다. 막내의 노래 솜씨는 어떠냐고요? 저음은 우수. 고음은 박명수. 그래도 아주 귀엽게 노래 불렀다. 애엄마의 노래 실력은 물어 보지 마라. 전문적으로 창을 배운 솜씨이니 일러 무엇 하겠는가? 내 노래 솜씨는 말하지 않겠다. 왜 노래 솜씨가 나이에 반비례하지?
한 시간 비용을 치렀는데 서비스로 한 시간을 더 줬다. 또 왔다고. 그런데 서비스 시간 다 사용 못 했다. 재환이 학원 수업이 있어 나와 재환이가 먼저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 오니 버스가 이미 떠났다.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를 타려는데 재문이가 헤어지기가 서운해 머뭇머뭇 거렸다. 재문이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 택시를 타려 하니 재문이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씩이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재문이에게 미안한 게 많으니 녀석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애틋하다. 서울에 오는 내내 재문이의 건강함을 빌었다.
"재문아, 아빠가 얘기 했듯이 네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라. 아빠도 열심히 생활해야 겠지.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지만 그 시간 아껴 쓰며 재미있게 지내자. 좋은 추억 많이 쌓으면서. 군대에서는 앞으로 나서지 말라는 아빠의 말 잘 기억하고 항상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해라. 내년 1월 정기 휴가 나오면 가족 여행을 갈 생각이다. 기대 많이 해라. 엄마는 네가 살이 좀 더 빠진 것 같다고 걱정이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많이 먹거라. 너희 삼남매가 이만큼 무탈하게 커준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다. 요즈음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하니 필요한 책 있으면 얘기하고 우선 컴퓨터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보낼까 한다. 또 만날 때까지 잘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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