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시 쯤 희준이한테 한통의 문자가 왔다.
"정석범 기자가 지병으로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석범이 형이 죽었다고? 내가 아는 석범이 형이 아니기를 바랬다. 한참 전 통화였지만 어디 아프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컴퓨터가 말썽이 생겨 윈도우를 다시 설치하고 있다 문자를 받았는데 설치하는 손이 계속 헛손질이었다. 마음이 몹시 심란하고 먹먹했다. 조금 지나니 희준이한테 전화가 왔다. "석범이 형 췌장암으로 어제 밤 저녁 10시쯤에 별세했데."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학교 때 편집일을 하며 가장 많이 시간을 함께 했던 선배였는데. 한 번 만나자고 했는데 이제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꼭 만나 술 한 잔 했어야 했는데. 그 강단 있던 사람이 이렇게 쉬이 갈 줄은 몰랐다. 아, 세월(歲月).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상진이형, 희준이,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석범이 형네 가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석범이 형의 단정함과 소박함이 한껏 묻어 있던 집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며 잠에 슬며시 빠져 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편집일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었는데 석범이 형한테 고맙다는 얘기도 변변히 못해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있었다. 편집일을 하며 이것저것 세심히 가르쳐 주던 석범이 형 모습이 아련하다. 표지를 직접 만들어 와서 어떤 것이 더 낫냐고 물어 볼 때의 순박한 표정이 기억난다. 프랑스로 미술사학 공부하러 갈 때 한 번 보았으니 참으로 못 만났다. 마음 가득하면서 왜 그리 만나기가 힘들었는지.
희준이한테 석범이 형이 대학 강의도 나가며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부고 메시지를 받고 인터넷으로 형의 궤적을 일부 확인해 보았다. 희준이 말대로 석범이 형은 공부한 것 아까워 어떻게 이 세상을 등졌는지 모르겠다. 석범이 형이 한국경제 문화전문 기자로 썼던 글을 하나 읽어 보았다. [건축과 미술 '한 몸' vs '별개']란 글이었다. 석범이 형의 간결한 글체가 익숙했다. 분석적 탁월성은 구성미를 더했다. 음악을 좋아하더니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그림 속의 선율’이란 기획 연재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세상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석범이형 엄청 공부했다고 하는 희준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건축과 미술 '한 몸' vs '별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15&aid=0003101476&sid1=001
학원 수업이 저녁 10시까지 있는데 오늘은 희준이와 9시에 만나 석범 선배 조문을 다녀올 작정이다. 살아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못 지킨 선배가 못내 야속하다. 뭐가 급하다고 이승을 그리 서둘러 떠났는지. 삶과 죽음의 문턱을 두어 차례 오가서 죽음에 무덤덤해 질 법도 한데 왜 이리 이승을 등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힘에 겨운지 모르겠다. 석범이 형,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요. 여기 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맡겨 놓고.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그 때 단 술에 단 얘기로 이야기 꽃 흐드러지게 피워 보자구요. 선배,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인 것 알죠? 내 선배여서 정말 고마웠소. 잘 가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