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생각 에세이

탁족(濯足)

열공 미남 2014. 8. 24. 23:51

 

탁족(濯足)은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 담근 것이다. 그러나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이고, 특히 발바닥은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진다. 또한 흐르는 물은 몸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해 주므로 건강에도 좋다. 음식이나 기구로 더위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더위를 잊는 탁족은 참으로 선비다운 피서법이다.


탁족은 피서법일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의 방법이기도 하다. 선비들은 산간 계곡에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씻기도 하였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맹자(孟子)』의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림이여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란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유래한 이 구절은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부터 탁족은 문사들과 화백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에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작가 미상의 고승탁족도(高僧濯足圖), 최북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가 있다. 한결같이 간결하고 고답적인 분위기의 그림들이다. 그런데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이 중국에서는 송(宋) 무렵부터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선비들의 탁족 풍속은 중국에서 유래한 듯하다. 그러나 고답적인 해석과 관계없이, 서민들의 피서법인 산유(山遊)에서 탁족을 하는 일은 자연 발생적 풍속이라고 여겨진다. 기계문명을 떠난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하고 건강한 피서법이다.

 

출처 : 한국세시풍속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