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 미남 2014. 7. 29. 23:51

난 초등학교 때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놀기에 바빴다. 이런 나에게도 상장의 기억은 있다. 선행상장. 말썽쟁이였지만 착하디 착한 나였기에 선생님들이 자주 선행상을 주곤 하셨다. 하지만 공부 잘하던 녀석들에게 나의 선행상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다. 그 녀석들은 우등상을 나에게 자랑하곤 했다. 나의 이런 수모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쫀심 엄청 상했었다.

 

집에서는 아들 녀석 공부 시켜보려고 없는 살림에 과외를 시켰다. 나를 포함해서 5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께 부탁해서 어렵사리 한 자리를 얻어 내가 그 과외 팀에 끼게 된 것이다.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갔는데 잘 살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왜 나를 여기 데려온 거야? 수줍고 주눅 들고 화가 났다. 애들의 얼굴에서 제가 왜 여기 왔지? 라고 의아해 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 쪽팔려.

 

과외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하루하루 억지로 갔다. 그러나 더는 과외를 가고 싶지 않았다. 젠 척 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 안가겠다고 땡깡을 부렸다. 나의 그 유명한 땡깡이 시작되었고 부모님도 어절 수 없었다. 그날로 과외는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나는 신나게 놀았다. 노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공부를 해야 하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공부와 친하게 된 일이 발생을 했다.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하니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산수를 가르쳐 주셨다. 담임선생님이 하자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 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선생님이셨다. 틈틈이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셨다. 특별 과외가 시작되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쪽지시험 점수가 높아졌다. 어, 나도 저 점수를 받을 수 있네. 나 자신한테 감탄했다. 내 머리도 꽤 괜찮구나.

 

담임선생님이 내가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있음을 아시고서는 독서반에 나를 집어 넣으셨다. 위인전기를 많이 읽었다.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익숙해지니 훨씬 공부가 수월해졌다. 집에서 노는 시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수에 이어 다른 과목 점수들도 모두 높아졌다. 3개월도 안 되서 성과였다. 과외에서 나를 깔보던 녀석들도 이제 나를 무시하지 못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쌔끼들, 앞에서 까불더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된 나의 공부 바람은 6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공부 쪽에서 온양온천국민학교를 평정했고 할까? 물론 졸업할 때 상을 탔다. 집에서 학교를 좀 더 찾아갔으면 더 좋은 상을 탔으련만 좋은 상은 엄마 치맛바람이 쎈 녀석들에게 돌아갔다. 하긴 먹을 걸 걱정해야 하는 집안 형편이었으니 그런 걸 바라는 것이 무리였다. 나에게 공부의 재미를 가르쳐주신 이관구 선생님은 지금 건강하게 잘 계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