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매니저 등장
서울 양천구의 한 고교 3학년인 김민호(가명ㆍ19)군은 최근 대학에서 주관하는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했다. 입상 경력을 만들면 목표로 하는 수도권ㆍ충청권 의대 수시 합격에 유리하다는 '대입 매니저'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지난 3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성적이 다소 떨어지자 매니저는 김군에게 족집게로 소문 난 과외교사와 학원도 추천해줬다.
김군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에 4번(주 1회당 60분) 집에서 대입 매니저에게 입시상담을 받고 있다. 학습지도를 하지 않지만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분석해 유리한 수시 전형을 찾아주고, 대비를 돕는다. 김군의 아버지는 "의대를 진학하기에는 학교 성적(상위 5%)이 애매하고, 입시전형도 복잡해 지인의 소개로 대입 매니저를 두게 됐다"며 "지금까지 매달 100만원씩 800만원을 지불했지만 수시 지원이 시작되는 9월까지는 계속 상담을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액 입시 컨설팅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원서접수를 앞두고 합격이 유리한 대학과 학과를 찍어주는 수백만원짜리 컨설팅은 기본이고,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킨 여성이 남의 아이를 맡아 대입을 책임지는 '입시 대리모'에 이어 과외교사처럼 집으로 찾아와 맞춤형 입시 전략을 짜주는 '대입 매니저'까지 등장했다.
중상위권 대학 진학이 목표인 고3 박기범(가명ㆍ19)군도 서울 영등포구의 고교에 진학한 직후부터 매달 100만원씩 내고 대입 매니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박군이 자연계를 택한 것도 "대학 진학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매니저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1,2학년 동안 8번 치른 모의고사 성적을 바탕으로 지원 가능한 대학 전형을 좁혀 논술 등을 집중 대비하고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입 매니저와 입시 대리모 모두 복잡한 대입전형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전문업체 이투스청솔에 따르면 2015학년도 전국 215개 대학의 수시ㆍ정시 전형 수는 2,988개(수시 2,000개ㆍ정시 988개)로 전년도(2,883개)보다 늘었다. 지난해 학부모와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정부가 발표한 대입 전형 간소화 정책이 현장에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대학의 평균 전형 수는 13.9개, 서울 소재 42개 대학은 이보다 많은 평균 16.5개였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대입 전형 수가 여전히 많다는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고액 컨설팅 수요가 늘고, 학원 입시상담가 출신 강사들이 대입 매니저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사교육 시장 확대와 음성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도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만 봐도 교과ㆍ비교과ㆍ면접ㆍ추천서ㆍ수능최저등급ㆍ학생활동 등 준비해야 할 요소가 다양해 고액 컨설팅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전형 수 감축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전형요소 간소화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대입 상담에 대한 불신도 고액 컨설팅 수요 확대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안상진 부소장은 "상위권 대학에 보낸 학생 수가 명문고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면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 위주로 입시 지도가 이뤄지다보니 소외된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범 평론가는 "진로진학상담교사 확대 등 공교육에서 체계적인 입시 지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편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일보 변태섭기자 입력시간 : 2014.04.10 03:33:10